네빌고다드 부활에서 상상력을 이용하는 삶보다 더 지혜로운 삶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여러분에게 곧 펼쳐질 미래는 여러분 작금의 상상 활동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여러분의 뜻대로 자신이 기뻐할 만한 상상의 활동을 불러내어서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운명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실제로 해보시면 잠든 거인은 그렇게 여러분 안에서 깨어나게 되는것입니다.
상상력과 현실의 연관성
이어서 만약에 우리가 사랑스럽지 않은 상상을 무분별하게 품는 것이 불러오는 현실 결과는 명백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상상력이란 진리 양날의 검을 사용하지 않고서 창고에 처박아 두는 행위 역시 여러분 자신에게 서 실질적인 경험의 재산을 빼앗아버리고 황폐함만 남도록 할 것입니다.
네빌고다드가 강조하는 상상의 힘을 제대로 이용하지 않을 시 성경에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큰 악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현실 삶 속에서 무척이나 해결하기 힘든 두려움 근심 걱정 거리 문제가 있을 때 그것에 그저 반응하며 현상을 분석하는 상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 여러분 자신에게 더 큰 악은 없습니다.
도저히 인생이 바닥이라 여겨질 때 오히려 여러분이 이미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현실감 있게 느끼며 상상하는 태도를 일깨워낼 수 있다면 이것은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일생일대 사건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상상력 해석
네빌고다드는 관련하여 구약성경 시편 110편 1절 에서 이것을 그대로 묘사하여 비유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 구절이니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이 성경말씀의 의미는 내 의식이 법칙의 올바른 편에서 상상력인 그리스도가 계속 앉아있어, 법칙의 왼쪽으로 앉아있지 않게 되므로 상상력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창조할 수 있는 권능으로 폭발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 번 읽어보셔야 이해가 될 수 있는데요, 여기서 여호와는 존재의 의식인 I AM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이며, 내주는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그리스도인 상상력이자 욕망을 뜻합니다.
내 우편에 앉아 있음은 하느님이라는 의식을 인식하여 법칙의 올바른 편에 언제나 여러분 욕망과 상상력이 믿음의 힘으로 권능을 발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엄청난 성경 형이상학 진리이며 대부분 사람들은 성경의 표면적인 부분만을 읽고 넘어가므로 뜻을 모르셨을 겁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의식 속에서 스스로 이상을 놓쳐버릴 때를 제외하면 무엇도 여러분에게서 이 꿈과 이상을 뺏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상상력의 올바른 활용
여기서 네빌고다드는 아주 강력한 멘트를 하는데요, "여러분의 내면을 변화시키기 전에 외부의 보이는 환경들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대항해 싸우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내면의 변화가 없이 외부를 바꾸려 한다면 이는 자연의 섭리에 대항해 싸우는 것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 대목입니다.
내면의 변화와 상상력의 힘
내면에 스스로 변화를 만들지 않고서 여러분이 현실에서 무언가를 하려 한다면 그것은 단지 눈 가리고 아웅 하고서 표면만을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소망이 이미 완벽히 성취된 것을 느끼고 상상해서 그 결과상태와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가 되면 여러분은 변화된 내면에 맞춰서 자연스레 성취자로서 행동하게 됩니다.
실제로 명상이나 네빌링을 통해 원하는 결과에 나를 두어도 이를 끝까지 지켜내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은 마음을 품어야 가능하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 내면의 상상으로 변화되어 행동이 자연스럽게 변화되기도 했는데요, 원하는 것을 실로 갖고 있다 느껴서 갖은 자의 여유가 자연스레 흘러나와 주변인들이 변화된 모습을 실제로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네빌은 한 상태에 머물다가 다른 상태로 변화될 때 겪는 일시적인 변화는 진정한 내면의 변화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은 잠시 원하는 상태에 머무는 듯하다가 급격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급격히 돌아왔다면 기존 삶의 관성을 완전히 중화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상태가 점점 견고 하게 자리를 잡고 지속적인 분위기와 습관적인 태도를 만들게 된다면 그런 지배적인 상태가 여러분 자신 본연의 성격으로 자리 잡는 진정한 변형을 이루어낸다고 네빌은 말합니다.
그것을 유지하는데 추가 비결은 자신을 그것에 떨궈서 내가 이미 그 상태라고 욕망의 성취 단계에 나를 떨궈뜨려서 내려놓는 것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원하는 꿈과 이상을 깊게 사랑하여 소망이 성취된 것 안에 여러분 자신을 정신적 영적으로 떨궈 내려놓아야 하고 또 새로운 상태 안에 머물며 더 이상 이전의 관념기억을 소환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관계
의식 자체가 사랑에너지이기 때문에 오직 사랑 자체인 인식은 사랑 안에 자신을 풍덩 떨궈놓을 수 있을 뿐이죠. 그때 그 욕망은 사랑 안에서 승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식은 사랑에너지 자체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랑 즉 인식에너지는 믿음과 강렬한 느낌이란 것을 통해 없음을 있음으로 불러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이 사실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제 주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이 아니면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 믿음은 무엇에서 그 가치를 도출시킬까요? 바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적 믿음의 의미
네빌고다드 부활과 관련하여 신약성경 로마서 4장 17절 ~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느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가운데 그것을 바라고 믿었기에 이를 의롭다고 여기며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습니다.
즉 여러분이 현실에서 등을 돌리고 보이지 않는 소망을 믿음으로 추구하게 될 때 바로 성경 속 아브라함 이 상징하는 그 믿음의 시초 의식 상태를 만들게 됩니다.
현실과 상상 사이의 괴리
우리가 통상 삶에서 어떤 형상들을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먼저 다가오는 것은 보이는 감각의 형상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실이라고 여기며 이성과 오감을 통해 지금 받아들이고 있는 인상 역시 단지 하나의 마음속 형상일 뿐이며 기억 속의 여러 이미지나 소망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그것들과 본질 상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성과 오감을 통해 반응하여 얻어진 인상들이 더욱 쉽게 현실이 되며 또 기존 현실을 더욱 공고히 하는 이유가 뭔지 의문이 생깁니다.
4차원과 3차원의 차이
그 이유는 바로 4차원 원인세계에서 활동해야 할 상상력이 보다 저 차원 결과세계인 현실 3차원 시공간적 형상 안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이 우리 인간인 아담 고깃덩어리의 무덤 동굴 안에 갇힌 채 부활을 꿈꾸지 못하는 형국이죠. 반면에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소망과 욕망을 쉽게 현실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상상력이 소망 욕망 안에 들어가서 하나로 느끼며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욕망 성취의 결과로부터 생각하지 않고, 소망 욕망의 바깥에서 겉돌며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그것을 멀찍이 떨 궈놓고서 그것을 생각하기고 그려내기만 할 뿐이죠.
계속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결국 나는 그것이 될 수 없음을 계속 증거 하는 행위밖에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상상 속의 형상과 하나가 된다면 창조적으로 변형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을 실현하게 될 것이며 또한 여러분은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치를 새삼스레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마치며 다음에 이어서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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